나는 배달이었다. 흔히 말하는 라이더다. 마땅히 배운 기술도 없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하는 일이라고는 실없는 농담이나 여자 이야기 그것도 아니면 한탕 하자는 이야기 뿐이다. 몇 십 억대 부자가 될 멋진 아이디어가 있다지만 몇 년째 같은 이야기만 되풀이 하고 있고 밑도 끝도 없는 전개가 전부였다. 당장 먹고 살 궁리부터 해야 하는 상황이다.
오토바이 타는 모습이 한 때는 멋있다고 생각 한 적도 있었는데 배달도 예전만치 않고 위험하기도 하지만 딸배라는 시선이 더 싫었다. 그러나 무엇 보다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직장이라는 것을 구하기로 마음 먹고 취업 사이트를 알아 보았다. 그러다 간신히 대형 레스토랑 취업을 하게 됐다. 아니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게 되었다. 한 달 단위로 계약을 하는 조건이었다. 레스토랑 사장도 좋은 사람 같았고 주방장도 진짜인지는 모르지만 프랑스에서 유학한 사람이라고 한다. 다들 쉐프라고 불렀다. 원래 자신과 오랜 시간 손발을 맞춰 자신의 기준에 합격한 사람만을 팀원으로 인정한다는 원칙이 있다고 한다. 같이 일하게 된 걸 대단한 기회인 것처럼 말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당분간 식당에서 감자와 양파를 깎고 식자재 운반하면서 틈틈이 기본기부터 익히고 일하는 거 보고 정식 팀원이 될지를 결정하겠다고 한다. 옛날처럼 사부와 제자 사이도 아니고 뭐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당장 할 일도 없고 이게 흔히 말하는 인턴십인가 싶어서 일단 해보자 마음 먹었다. 무엇 보다 최저 임금 보다 더 주고 하루 아침 10시 부터 밤 10시까지 12시간이지만 2시부터 5시까지 브레이크 타임에는 늦은 점심 제공과 3시간 자유롭게 쉴 수 있다. 여덟시간은 일반 급여가 적용되고 저녁 시간 대에는 추가 2시간을 초과 근무로 야간 근무로 인정해서 시급의 1.5배를 준다는 조건이다. 주말 근무는 선택이지만 전체 시간을 2배로 인정해 준다는 것이다. 이정도면 좋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출근 하기로 했다.
출근 첫 날 오전은 주방 시설과 식자재 창고 위치와 언제 어떤 것이 어디로 배달되어 오는지 배달이 오면 어떻게 관리하고 먼저 들어온 식자재와 나중에 들어온 식자재 등을 어떻게 배치 하는 지 등을 알려 주고 앞으로 내가 손질할 식자재들을 일할 위치에 배치하였다. 좀 쉬려나 싶은데 점심 장사 준비를 해야 한다며 바로 감자를 깎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칼질도 서툴고 감자의 몸통이 뭉퉁뭉퉁 잘려 나갔지만 10개 넘게 깎을 무렵에는 제법 껍질만 얇게 깎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은근히 자신감이 생기면서 나도 조만간 이런 큰 레스토랑의 쉐프가 될 수 있겠다는 상상을 하게 됐다. 한 박스를 다 깎으니까 통 하나에 가득하게 담겼다. 한 시간 쯤 일하고 한가득 담겨 가는데 이 감자를 어떻게 할까 생각 중인데 쉐프가 지나가면서 “이런 것도 제대로 못하냐는” 핀잔의 말을 던지고 갔다. 화난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지나가는 주방 아주머니가 한마디 하셨다. “껍질이 군데 군데 덜 깎였잖아요, 감자 눈은 하나도 안파냈네” 감자가 눈이 있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속에서 올라오는 욕을 참고 밖에 나가 담배를 한대 피웠다. 담배 한모금 내 뱉으면서 “쨀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주방으로 들어오니 써드(third) 라는 사람이 감자 다 깎았으면 갈아야 하니까 테이블 위에 올려 놓으라고 한다. 아직 화가 덜 풀렸지만 내색하지 않고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감자 갈리는 소리가 잠시 들리더니 금방 더 큰 쉐프의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주방은 정적이 흘렀다. 감자가 문제였다. “넌 생각이 있어 없어. 이 감자로 음식을 만들겠다는 거야?” 써드라는 사람은 난감한 표정을 하며 나를 한번 쳐다 봤다. 억울함이 잔뜩 묻어 나는 얼굴이었다. 그렇다 감자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였다. 깎아 놓은 감자 상태를 쉐프가 지적했는데 그걸 그냥 올린 것이다. 써드는 감자가 담긴 통을 들고 와서 내 앞에 ‘텅’하고 내려놨다. 나는 ‘ㅆㅂㄹ, 이정도면 됐지 별 그지 같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방 아줌마가 빈 통을 들고 와 감자통 옆에 살며시 내려놨다. 뭐지 싶었는데 다시 깎으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점심 장사 준비로 주방은 다시 바쁘게 돌아갔고 나는 그 자리에서 나의 1차 결과물이었던 감자들을 하나 씩 꺼내서 남아 있는 감자 껍질과 무엇인지 알게 된 감자 눈이라는 걸 칼 끝으로 파내고 있었다. 쉐프는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칼질을 하며 말했다. “곧 손님 들이닥칠 테니 빨래 끝내” 지금도 화가 난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듣는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감자를 한참 손질하고 있는데 주방 아줌마는 통에 물을 받아서 다시 손질 해 놓은 감자 통에 부었다. “깎은 감자는 깨끗한 물에 담궈요” 아줌마는 친절한 말투는 아니었지만 은근히 챙겨주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감자를 다 손질하고 써드에게 말하니 무표정 하지만 아직 화가나 있음을 행동으로 표현하면서 믹서기를 세팅했다. 그 옆에 멍하니 서 있으니 다른 식자재 옮기고 양파를 깎으라고 했다. 또 욕이 올라 왔다 ‘ㅆㅂㄹ’ 하지만 나는 내뱉지 않았고 양파를 가지러 자재 창고에 갔다. 그렇게 점심 장사를 위해 감자 한 박스와 양파 두 망을 까고 점심 장사가 끝나는 3시까지 청소와 설겆이를 했다.
3시 부터 5시 까지 브레이크 타임에는 늦은 점심 식사를 주방에서 했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였다. 주방 사람들은 믹스 커피도 마시고 은행 볼일 보러 가는 사람, 주변에 휴게방이 있다며 잠시 자러 간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두 시간 동안 뭐하지 생각하며 담배를 피고 있는데 써드가 다가와 말했다. “첫 날이라 잘 모를 수 있겠지만 감자 깎는 걸 좀 더 빨리 했으면 해요 오늘 다행히 손님이 적게 와서 아슬아슬 하게 처리를 했지만 감자랑 양파는 미리 깎아 놔 손님 붐비면 정말 바빠지니까” 반말도 아니고 존대도 아닌 어중간한 말투였지만 별로 친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그러겠다고 하고 나는 일도 없으면서 볼일을 보고 오겠다며 꾸벅 인사하고 나왔다.
마땅히 갈 곳도 없고 커피숍에 갈까 하다가 돈이 아까워서 편의점에서 아이스 아메카노를 사들고 5시에 맞춰 주방으로 들어 왔다. 주방에는 벌써 장사를 준비 하고 있었고 써드는 감자랑 양파가 없는데 미리 좀 준비 해 놓으라는 말을 했다. ‘뭐야 ㅆㅂ 5시 까지 자유라며’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감자와 양파를 깎기 시작 했다. 점심 때와는 달리 저녁에는 사람들이 몰려 오기 시작 했고 나는 잠시도 쉬지 못하고 깎았다. 자재 창고에 남아 있는 감자와 양파를 더 깨내야 했다. 설겆이도 쌓이고 정말 정신 없이 시간이 흘렀다. 어느 덧 퇴근 시간이 되었다. 밤 10시에 칼 같이 문을 닫았다. 주방 사람들과 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니 꽤 많은 사람들이었다. 주방에 나 포함 4명 홀에는 6명이었다. 오늘 점심과 저녁 시간대 손님이 예상과 달리 적게 오고 많이 오고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감자와 양파를 미리 준비 하자는 말도 나왔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지만 나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늘 영업이 종료 되고 희망자에 한해 간단하게 함께 저녁을 먹는 듯한 분위기이다. 첫 날인데 같이 먹겠냐는 말을 했다 내가 가면 밖에 나가서 간단히 먹자고 했지만 나는 오늘 너무 힘들었다며 다음에 같이 먹자고 불편함을 보였다. 솔직히 너무 힘들었고 같이 밥 먹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사장이 수고 했다며 해산을 이야기 하자 사람들은 표정이 밝아졌다. ‘일이 끝나서일까? 회식을 하지 않아서일까?’ 알 수는 없었지만 그렇게 모두들 퇴근을 했다.
첫 날을 그렇게 보내고 한 주가 지나고 주말이었다. 한푼이라도 아쉬워서 주말 출근을 선택했고 마침 주말 알바가 일을 그만 둔 이유도 있었다. 여전히 내가 하는 일은 식자재를 옮기고 감자와 양파를 깎고 주방 청소와 설적이다. 이 집은 감자와 양파 전문점인지 양이 매우 많았다. 주말이면 그 양이 두배가 되는 듯 하다. 나는 주방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홀에는 거의 나가 보지 않았다. 관심도 없었고 혹시라도 다른 일을 시킬까봐서다. 평일에는 감자 3박스를 주문 하고 주말에는 6박스를 주문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 토요일은 3박스만 왔길래 그런가 보다 하고 자재 창고에 옮기고 감자를 깎고 있는데 점심 장사가 끝날 무렵 감자가 떨어졌다는 것을 써드가 알게 되었다. 그걸 전해 들은 쉐프는 난리가 났다. “야 써드, 넌 도대체 몇 년 째 나랑 일 하고 있는데 ….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일하는 거야”라며 상당히 공격적으로 이야기를 했다. 써드는 정확히 6박스를 주문 했고 주문 확인서를 나에게 전달 했다고 쉐프에게 설명을 하는 것 같았다. 써드는 나를 한 번 쳐다봤다. 난 속으로 ‘뭐, 왜 날 쳐다봐 주문은 지가 해 놓고’라 생각하며 내가 실수한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나의 할 일인 감자와 양파를 깎기 시작했다.
쉐프, 써드, 주방 아줌나 그리고 존재감 없는 여자 이렇게 4명이 모여 대책을 논의 하는거 같았다. 감자가 뭐 대수라고 저렇게 유난을 떠냐? 식자재상에 급히 전화를 했지만 주말이고 배달해줄 상황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인근 대형 마트를 수소문 해서 간신히 감자를 구매해 왔지만 쉐프는 원하는 감자 품종이 아니라고 써드에게 다시 화를 내고 있었다. 그 때 주방 아줌마가 다른 곳에서 일을 보다가 다가 와서는 조용히 전화를 한다. 감자가 다시 올거라고 쉐프를 진정시켰다. 쉐프는 감자를 깎고 있는 나를 쳐다 보다가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어찌저찌 저녁 장사까지 마치고 퇴근을 하는데 써드가 나를 부르더니 “왜 주문 수량을 확인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나는 배달이 왔길래 하던대로 자재 창고에 옮겼을 뿐이라고 했다. 써드는 별 다른 말이 없었다.
그렇게 또 한 주가 지났고 식자재가 오면 수량 확인하고 내가 할 일인 감자와 양파를 열심히 깎았다. 이제는 거의 신의 경지에 다다른 듯 하다. 속도도 빨라져서 담배 필 시간도 더 생기고 스마트폰 보면서 게임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틈틈이 기본 기술을 가르쳐 준다고 하더니 별 말이 없다. 감자나 양파 정도 갈고 써는 일은 나도 할 수 있을 텐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함부로 칼을 들겠다고 하면 안된다는 내용이 기억 나서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다. 솔직히는 다른 일을 더 시킬까봐 귀찮아서이기도 했다.
쉐프라는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중 하나가 감자와 양파 등 원재료는 사람의 손으로 다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껍질도 손으로 일일이 깎아야 하고 채써는 것도 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감자를 가는 것도 처음에는 멧돌 같은 걸로 사람이 손으로 갈았던 걸 최근에야 믹서기로 바꿨다는 거다. 감자의 식감을 살리기 위해 한번에 여러 개를 갈지 않고 슬라이스 치듯이 갈아서 속도가 더디다고 한다. 내 알바는 아니었다. 나는 껍데기만 깎아 내면 그뿐이었다. 그게 내 일이 되지 않으면 그 뿐이었다.
한 달이 다되어 가던 날, 나는 자재를 받고 자재를 정리하고 계속 감자만 깎았다. 쉐프는 여전히 나에게 먼저 말을 거는 법이 없고 써드도 간간이 일을 지시 하던 것들이 줄어 들었다. 존재감 없는 여자는 처음 부터 지금까지 말도 거의 안섞는다. 이젠 주방 아줌마도 나에게 와서 넌지시 알려주는 그럴 일도 없다. 문제 없이 자재 받아 정리하고 감자 양파를 깎아내는 나의 완벽함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슬슬 일도 익숙해지고 감자, 양파만 깎는게 지겨워 져서 우리도 감자랑 양파 깎는 기계 사면 좋지 않겠냐고 이야기 했더니 존재감 없는 여자가 “너 있는데 무슨 기계를 사”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화가 났지만 억눌러 참았다. 쉐프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안그래도 기계 주문을 부탁 해 놨어요” 그 말을 들으면서 나도 이제 슬슬 쉐프의 길에 한걸음 나서는 구나 싶었다.
주방에서는 라스트 오더를 처리하고 마무리 단계였다. 이 시간이면 조금 여유가 있다. 주방 정리도 일찍 해 놓고 담배도 한대 피고, 게임도 간단하게 홀 정리 되는 것을 기다린다. 홀도 마지막 손님 나가길 기다리며 청소며 마지막 접시 등을 나리기 바쁘다. 그래도 나는 홀에는 안나가본다. 다른 주방에 있는 사람들과도 말을 섞지는 않는다. 나의 쉬는 시간은 소중하니까.
그렇게 쉬고 있는데 사장이 나를 호출 했다. 조용한 곳에서 보자길래 갔더니 잠시 머뭇거림도 없이 한달만 일 하자는 것이다. 다른 일자리 알아 보는데 아직 2~3일 여유 있으니 준비 잘하길 바란다고 한다. 나는 아주 ㅆ스러운 기분이었다.
다음날 아침 감자와 양파 보다 왠 기계장치 하나가 먼저 왔다. 배송온 사람은 하역장에 서 있는 나에게 식당 관계자임을 확인하고 설치 위치를 알려 달라고 했다. 나는 이게 뭐냐고 아는 바가 없다고 하는데 뒤에서 써드가 와서는 주방 안으로 옮겨 달라며 같이 이동했다. 나는 담배를 마저 피고 주방으로 들어가니 스탠으로 만든 기계가 아직 비닐 옷도 안 벗고 내가 일하던 자리에 세팅이 되고 있었다. 뭐냐고 물으니 감자 깎는 기계라며 배송 온 사람이 말해 줬다. “아 ㅆㅂ,” 단발의 욕이 입에서 나왔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레스토랑은 감자와 양파를 주요 테마로 하는 곳이었고 쉐프는 진짜 자신의 기준을 통과해야 일도 가르치고 혼도 내는 팀원으로 인정하는 사람이었고 프랑스에서 요리를 배운 것도 사실이었다. 사장은 와이프, 아줌마로 알고 있던 사람은 세컨드, 존재감 없는 여자도 써드였다. 그리고 주방과 홀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일하던 3명은 전문대에서 요리를 전공하고 있는 학생 인턴이었다.
그리고 나는 감자 깎는 기계였다.
내 앞에 일했던 사람도, 그 앞에 일했던 사람도.
내 뒤는 감자 깎는 진짜 기계가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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